만인의 적
| Name : 윤태용   | View : 11 | Vote : 3 | Date : am.9.16-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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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萬人)의 적
조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누구는 적이 많다’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 말이 곧 ‘사회성이 없다’, 혹은 ‘자기주장이 강하다’, ‘턱없이 독단적이다’라는 말로 환치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사회성이 없다’라는 말은 곧 인간성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됩니다. 언필칭, ‘못되고 욕심 많은 인간’을 지칭하는 말로 들리기에 ‘적이 많다’라는 말은 누구나 듣기 싫어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는 (이유 없이) 모두가 싫어한다’라는 말 다음으로 가장 듣기 싫은 말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선의의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혼자서 꼭대기에 오른 사람들에게는 ‘적이 많다’라는 말이 듣기 싫은 것이 아닙니다. 적의 숫자만큼 내 영광도 빛납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내 노력의 성과도 더욱 더 빛납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적은 내 가장 아름다운 얼굴입니다. 내 적이 많으면 많을수록 나는 더 아름다워집니다. 스포츠의 스타플레이어들이 자신의 타고난 미모나 체격보다 훨씬 더 많이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적이 많은 것’에는 두 종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나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좋은 것입니다. 하나는 본인이 성질이 더러워서 생긴 적들이고, 다른 하나는 본인에게 실력으로 패해서 생긴 적들입니다. 전자는 내 사회성을 욕되게 하는 것이고 후자는 내 능력을 과시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적’의 개념이 사용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저와 친한 한 후배 동료도 얼마 전에 그런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은 적도 많지만 동지도 많지 않습니까?”라고 제게 말했습니다. 이제 와서 제게 ‘적’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다만, 적을 조금 줄일 수도 있었는데 그런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막 살아 온 것에 대한 후회는 있습니다.
40년 이상 직장 생활을 해 본 경험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복불복이지만, 제가 몸 담은 곳 중에는 물 맑은 직장이나 사회단체가 있고 물 탁한 직장이나 사회단체가 있었습니다. 물 맑은 곳에서는 적을 만들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서로 격려하고 서로 존중할 일만 있었습니다. 물 탁한 곳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주위에서 도발이 들어옵니다. 개인적으로도 들어오고 단체로도 들어옵니다. 당연히 적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제 경우는 물 맑은 직장에 다닐 때에는 ‘대화가 되는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 ‘천성적으로 종교적인 사람’ 등으로 대접받았고 물 탁한 곳에 몸담고 있을 때에는 ‘너무 강한 사람’, ‘잘 부러지는(백절불굴?) 사람’, ‘적이 많은 사람’ 등으로 매도되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결국은 복불복입니다. 혼자서 맑게 산다고(살고 싶다고) 자부해 봐야(아등바등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살이가 ‘그때그때 달라요’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입니다.
다행인 것은, 철들고 본격적으로 시작한 무도(검도) 수련에서는 비교적 탁한 물을 덜 만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적이 많다’라는 소리를 크게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본디 그쪽 물이 ‘맑은’ 덕분인지 제가 조직문제에 깊이 관여하지 않은 덕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제가 워낙 강하고 못된 천적들을 가지게 된 때와 운동에 몰입한 때가 겹친다는 것입니다. “만 명의 적을 이기는 것보다 내 안의 적 하나를 이기는 것이 더 어렵다”라는 옛 성인의 말씀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절감하는 게 무도의 세계입니다. 그 강한 적과, 내 안에 있는 그 ‘만 인의 적’과 상대하기도 벅찬데 어떻게 밖의 소소한 적들과 싸움판을 벌일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나마 ‘적 없는 사회’ 하나를 온전히 가질 수 있었던 것이 제게는 큰 복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족 한 마디. 따지고 보면 ‘적이 많다’는 것은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는 말일 것 같습니다. 적이 없어서 ‘무골호인(無骨好人)’이라는 평을 받는다고 내 살림살이가 더 나아질 것도 없고, 적이 많아서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평을 받는다고 월급이나 연금이 깎일 일도 없습니다. (인생살이 길어야 백년입니다. 욕심내서 나대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래봐야 오십보백보입니다. 누구 하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목적 이외의 이유로 친구를 사귀는 사람은 없습니다. 개중에는 잇속을 차리기 위해 주변에 잘 보이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나이 오십만 넘기면 담박에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눈치 보며, 평판에 얽매여 공연히 옹졸하게 살 필요가 없습니다. ‘적이 많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일부러 ‘내 안의 적들’에게 휘둘리며 속병 들어 고생하는 것보다는, 보이는 족족 ‘(공공의)적들과의 일전’을 불사하는 편이 훨씬 나을 때도 많습니다. 그게 내 안의 적을 하나라도 더 소탕하는,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가벼운 몸으로 이 세상을 뜨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내 마음만 흐트러지지 않으면 적은 어디서나 내 아름다운 얼굴입니다.

글.사진  #양선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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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eyong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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