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육 반 접시
| Name : 윤태용   | View : 86 | Vote : 25 | Date : pm.8.22-12:26
DownLoad #1 : DSC08719.jpg (119.5 KB), Download : 0


DownLoad #2 : 10463874_737543672977847_3821965484188640902_n.jpg (74.2 KB), Download : 0

편육 반 접시
  
서울 을지면옥에서 점심을 먹으려면 늦어도 11시 45분에는 당도해야 한다. 자칫하면 3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 메밀국수를 기계로 뽑아 육수와 동치미 섞은 국물에 담아주는 그것, 냉면을 먹기 위해 그렇게 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 때도 있으나 어쩌겠는가, 을지면옥 냉면이 갑인 것을. 나의 여름은 을지면옥에 저당 잡혔다.

전당포 주인은 주 3회씩 온다고 특별히 자리를 마련해주지도 않는다. 그 선량한 얼굴은 그저 "오셨어요?" 한 뒤 "몇 분이세요?"라고 묻는다. 아마도 '많이 기다려야 할 것 같은 데 옆 공구상에서 펜치나 드라이버를 좀 사고 이따 오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것 같다. 실제로 을지면옥 냉면을 기다리다가 줄자나 펜치를 산 적도 있다.


운 좋게도 셋이 간 점심에 자리가 났다. 편육 한 접시를 먹는데 아무래도 부족한 것 같다. "편육 반 접시 더 주세요" 했더니, 놀랍게도 "반 접시 없어졌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럼 한 접시 단위로 시켜야 한단 말인가. 내친김에 "그럼 소주 반병도 없어졌느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반 접시와 반병을 주문할 수 있는 곳… 아, 님은 갔습니다.

처음 이 냉면집에 갔을 때―꽤 오래전이다―혼자 온 어르신들이 많아 놀랐다. 그분들은 편육 반 접시와 소주 반병을 시켜 드시곤 했다. 그 뒤에 국수를 시키는 것이다. 소주 반병은 플라스틱 병에 든 200mL짜리 소주였다. 그런 풍경은 서울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웠기에, 이 냉면집의 경쟁력이 단순히 면발과 육수에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 냉면집에 줄곧 다니다 보니, 단골들은 오후 1시 넘어야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상대적으로 젊은 손님들이 너무 많아, 단골 노인들은 좀 한가해질 때가 돼야 오는 것이다. 어쩌면 메뉴에서 편육 반 접시와 소주 반병을 빼버린 을지면옥도 오후 1시 이후엔 반 접시, 반병 주문을 받을지 모른다. 나는 구부정한 허리로 계단을 혼자 올라 편육 반 접시와 소주 반병을 시키는 어른 옆에서 냉면을 먹고 싶다. 늘 주문을 받는 아주머니도 "원래 안 되는데, 특별히 드릴게요" 하면서 편육 반 접시를 줄지도 모른다.

퍼온글
IP Hash : a7ef122f9726a07117f6850c8d527755 Capacity : 1885bytes 
 taeyong59
 
Article : 306 / Page : 16 / Login Member : 0 / Your IP : 54.224.***.***
번호순으로 정렬제목 순으로 정렬 날짜순으로 정렬이름순으로 정렬추천순으로 정렬조회순으로 졍렬
 가입방법  
 태광사.공정무역.사회적책임  
304 냉면~~   pm.6.7-02:07 윤태용213
303 주말   pm.5.26-01:02 윤태용520
302 술의진실   pm.5.20-02:13 윤태용428
301 조림   pm.5.9-01:52 윤태용331
300 부모   am.5.9-11:43 윤태용530
299 입맛   pm.4.28-09:23 윤태용734
298 택배용지들   am.4.25-10:46 윤태용727
297 먹거리   pm.4.15-02:47 윤태용634
296 생각나는   pm.4.15-02:30 윤태용727
295 타인의고통   pm.4.13-04:46 윤태용736
294 만찬   pm.4.11-02:12 윤태용1441
293 소유...   pm.4.3-05:10 윤태용1441
292 4.3 오늘   pm.4.3-04:02 윤태용1543
291 칼만두...   pm.4.3-03:47 윤태용1552
290 멋진사람...   pm.3.19-04:33 윤태용1645
289 검진...   pm.3.19-04:26 윤태용1449
288 무술년   pm.12.31-08:34 윤태용17140
287 올 한해   am.12.29-10:47 윤태용18126
게시물 목록 펼치기 다음 목록 펼치기
  1 [2][3][4][5][6][7][8][9][10]..[16]  
Copyright 1999-2018 Zeroboard / skin by sirini

서울시 종로구 예지동 88~15 우일사.태광사 /  대표 : 윤태용 Mobile : 010-9253-0094